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약진 운동/치수사업 (문단 편집) === 십삼릉수고 공사 === [[파일:십삼릉수고.jpg]] 명십삼릉(明十三陵)은 베이징 북쪽 약 40km 지점에 있는 창평구 천수산 아래에 조성된 명나라 시대의 능묘다. 명 3대 황제 [[영락제]]부터 마지막 황제 [[숭정제]]까지 13명의 황제와 23명의 황후, 2명의 태자, 30여 명의 비빈 등이 묻힌 곳으로, 1961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에 지정되었고 200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마오쩌둥은 이 근처에 대규모의 저수지를 건설해 베이징 시민들에게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고 농업용 토지에 물을 정기적으로 공급하려 했다. 1958년 1월, 인민해방군 돌격대가 능 근처 계곡을 흐르는 강을 댐으로 막는 저수지 공사를 시작했다. 수도의 기관과 공장에서 인력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어 작업이 불철주야로 진행되었고 언론과 라디오는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공사 진척 상황을 보도했다. 이 공사엔 수만명의 지원자들이 참여했는데, 심지어 외국 외교관들도 이 공사에 함께했다. 작업은 밤낮으로 진행되었고 밤에는 횃불과 랜턴, 휴대용 석유램프에 의지해 공사를 지속했다. 이 공사엔 기계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공사장에 나온 사람들에게는 삽과 곡괭이, 그리고 잡석들을 [[화차(철도)|화차]]에 실어 담기 위한 바구니와 장대가 주어졌다. 화차는 댐까지 왕복 운행을 했고 잡석들은 댐에서 자갈로 갈렸다. 1958년 5월 25일 마오쩌둥이 군중 앞에 나타나 사진가들 앞에서 흙이 담긴 들통이 양 끝에 매달린 대나무 장대를 어깨에 걸친 채 포즈를 취했다. 이에 힘을 얻은 간부들은 노동자들을 독려했다. 그러나 정작 마오쩌둥은 한 시간 반동안 땅을 판 뒤 "이렇게 조금밖에 안됐는데도 벌써 땀이 비오는듯 흐르는군."이라고 말하고는 자신은 쉬러 가면서 측근들더러 대신 일하게 했다. 작업자들은 열 명 단위의 작업반으로 구성되었고, 작업반의 십장이 10명 단위 작업반에 보고하면, 그곳의 십장은 다시 다음 단위의 십장에게 보고했다. 모든 참여자들은 <3년간 힘들게 일하면 1만년간 행복하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는 막사나 농가에서 잤다. 특히 공사장 근처 주민들은 몇달 동안 온종일 고된 일을 하고 때로는 조금도 쉴 틈이 없이 밤새도록 일해야 했다. 그들은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한 채 비바람과 눈, 더위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명십삼릉 저수지 공사는 1958년 1월에 시작해 겨우 3개월 만인 1958년 4월에 완공되었다. 총 저수량은 8100만 세제곱 미터에 달했고 구산과 한포산 사이에 세워진 댐은 길이 627m, 높이 29m, 하단폭 179m, 상단폭 7.5m에 달했다. 그러나 공사를 너무 서둘러 수행하다 보니 저수지에 누수 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토양 응고 전문가가 초청되어 이 문제 해결에 착수했지만 애당초 공사를 너무 서둘렀기에 벌어진 일이라서 그들도 뾰족한 수를 쓰지 못했다. 결국 저수지는 3년뒤 물이 말라 버리면서 버려졌다. 그러다가 1984년 연경현의 백하보 저수지로부터 물을 끌어오는 공사가 진행되었고, 이 공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십삼릉 수고의 수면은 넓어지고 수질도 개선되었다. 또한 저수지에 중일합작으로 구룡 유락원을 건설해 관광객들을 초빙했다. 현재 명십삼릉 수고는 가뭄대비 및 식수 공급 역할을 차질없이 수행하는 한편 관광지로서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